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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다식

교육의 목적은 시험이 아니라 삶이다 (잘하는 아이 말고, 잘 사는 아이로) 본문

브리프 에디터노트

교육의 목적은 시험이 아니라 삶이다 (잘하는 아이 말고, 잘 사는 아이로)

cosyN 2025. 5. 6. 00:29

 

1. 공부는 잘하는데, 삶은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

  • 한국 교육의 딜레마 소개, 학업 성취도와 삶의 질 비교

2. 북유럽 교육의 방향은 전혀 다르다

  • 스웨덴의 무상교육, 놀이 중심 수업, 삶 중심의 접근

3. 겉으로는 비슷한데, 실제로는 무엇이 다른가?

  • 교사의 자질, 수업 방식, 참여적 교육의 유무

4. 만드는 교육이 남기는 경험의 깊이

  • 공예 수업, 음식 만들기 활동 비교

5. 빠른 사회에서 느림이 주는 배움

  • 소비 중심 문화와 ‘손으로 배우는 삶’의 가치

6. 아이에게 남겨줘야 할 진짜 능력은 무엇인가

  • AI 시대의 인간다움, 자율성과 공감력의 중요성

7.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 성적이 아니라 삶을 준비시키는 교육으로의 전환 제안

프롤로그 

아이에게 “공부 잘하니 참 기특하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셨나요?
그런데 “요즘 행복하니?” 혹은 “뭐 만들며 노는 걸 좋아하니?”라는 질문은... 얼마나 해보셨나요?

교육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는 쉽게 ‘성적’, ‘진학’, ‘미래’ 같은 단어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최근 아이의 수업을 들여다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우리가 너무 늦게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삶과 교육, 그 사이 어딘가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요.



한국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학업 성취도를 자랑합니다. 수학, 과학, 읽기 등 모든 영역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공부 잘하는 나라’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교육이 성적만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요?

 

최근 발표된 국제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중학생들은 친구 관계, 여가생활, 진로 탐색, 감정 표현, 자아 성장 같은 삶의 본질적인 영역에서는 30위권 밖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공부는 잘하지만,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 스웨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교육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보장되며, 부모의 소득과 무관하게 누구나 동등한 교육 기회를 갖습니다.
18개월의 유급 육아휴직, 놀이 중심의 수업, 감정 표현과 사회성 발달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 방식은 아이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자연스럽게 키워냅니다.
그 결과, 스톡홀름은 유니콘 기업 수에서 실리콘밸리 다음으로 많은 도시가 되었고, 스웨덴은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경쟁을 가르치고, 너무 늦게 삶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는 문제를 빨리 푸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함께 풀 줄 아는 사람입니다.
AI 시대일수록 인간다움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지식은 기계도 갖지만, 공감과 자율성, 삶을 주도하는 태도는 오직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적 좋은 학생’을 만들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가는 사람’을 길러낼 수 있을까?

요즘 북유럽의 교육제도와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을 비교해보면, 겉보기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제도적으로 명시된 교육 목표나 커리큘럼, 방과 후 활동 등만 놓고 보면 오히려 우리나라가 더 다양하고 잘 갖춰져 있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의 수업 내용을 보면, 과목 구성이나 학습 목표는 북유럽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다를까요?

해마다 아이의 경험을 통해 느끼는 것은, 결국 교육의 질은 '제도'보다 '사람', 즉 교사의 자질과 교육철학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수동적 방식의 수업이 존재하는 반면, 아이의 참여를 유도하고 함께 수업을 만들어가는 교사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아이들도 해마다 다른 경험을 통해 어떤 방식의 수업이 유익한지를 스스로 깨닫고 배우고 있습니다.

한 가지 인상 깊었던 부분은 스웨덴의 수업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미술과 공예가 분리된 독립 과목으로 운영됩니다. 미술은 그림을 중심으로 감각을 표현하는 과목이고, 공예는 목공, 섬유, 조립 등 ‘만드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수업입니다. 즉,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교육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화하게 되는 셈이죠.

얼마 전 아이가 학교에서 조별로 음식을 만드는 활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케이크, 피자, 샌드위치를 직접 만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이런 활동이 단순한 '꾸미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판 케이크 시트를 사서 크림만 짜고 데코레이션을 하는 정도로 축소되곤 하죠. 이미 다 만들어진 것을 사서 조립하는 것은 창조라기보다는 소비입니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것이 쉽게 손에 들어오는 사회입니다. 심지어 배달이 안 되는 것이 더 뉴스가 되는 상황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굳이 ‘처음부터 만들어보는 것’의 가치가 간과되기 쉽습니다. 반면, 북유럽에서는 불편함을 일부러 감내하며 천천히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교육의 중요한 축입니다. 이를테면 피자를 만들 때 밀가루 반죽부터 시작하고, 케이크를 만들며 계란 흰자를 거품 내 굽는 과정까지 체험하는 수업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죠.

이런 접근은 단지 요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통과하며 무언가를 스스로 완성하는 경험’ 자체를 배우게 합니다. 아이들이 손으로 만들고, 오븐 앞에서 기다리고, 잘못된 레시피로 실패도 겪으면서 얻게 되는 감각은 AI가 대신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공예를 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자주 이런 말을 듣습니다. “이걸 직접 만들어 쓰신 거예요?” 그리고 저는 느립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 ‘살아있음’이 있다는 걸 압니다. 그 움직임이 느린 만큼, 단단해진다고 느낍니다.

스웨덴처럼 혹독한 겨울을 지나는 나라에서는 바깥 활동이 어렵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 안에서 만들고 고치고 꾸미는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그 느린 겨울이 북유럽의 모던한 공예와 생활 감각의 기초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삶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먹고 씻고 입는 것’처럼, 그 과정을 ‘만드는 행위’로 직접 겪는 경험도 결국 똑같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전기가 꺼지는 날이 온다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무력하지 않을 겁니다.

어린 시절에야말로 다양한 과정을 직접 겪어보며 그 가치를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야만 ‘왜 이게 중요한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긴 것들 사이에, 놓치고 있는 삶의 본질이 있는 걸까요.

 

에필로그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아이에게도 ‘효율’을 요구합니다.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한 발 먼저 나아가야 한다고, 빨리 알고 빨리 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인생은, 밀가루 반죽을 하듯 느리고 손이 많이 가는 과정 속에서 단단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공부는 잘하지만 삶을 모르는 아이와
모든 걸 빠르게 해내지만 단 한 번도 ‘스스로 해봤던 적은 없는 아이’

과연, 우리는 어떤 어른을 키워야 할까요?

늦더라도, 돌아가더라도,
결국 아이가 스스로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갖기를 바라며.
오늘도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아이들을 어디로 데려가고 있을까?"